
산 사람을 위한 오답
산사람을위한오답 엔딩
구경하는 중이에요. 로그인 하면 주사위 기록과 채팅도 볼 수 있어요.
등장인물 · 3명
웨건손대지 말라는 말을 들은 편집자
날쌘돌이유서가 고른 정리자
지혜결말의 방향만 들은 제자목차 · 16화
1화
📍 2층 서재 · 낮 · 그 사이 한 시간 조금 넘게
이틀 만에 열린 2층 서재였다. 빗소리가 처마를 두드렸고, 책상 위 타이머는 사십칠 분을 남긴 채 째깍거렸다. 지혜와 날쌘돌이, 웨건은 마지막 노트 앞에 섰다. 결말 페이지에는 세 사람의 이름이 이미 적혀 있었다. 그다음 장은 뜯겨 나가고 없었고, 찢긴 자리에는 거친 종이 섬유만 남아 있었다.
지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누구죠?"
날쌘돌이가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나는 날쌘돌이. 이름에 맞게 날쌔지."
웨건은 고개만 끄덕였다.
"난 웨건. 할 줄 아는 거라곤 힘쓰는 것밖에 없지."
잠시 뒤 지혜가 다시 물었다.
"당신들은 여기 왜 있는 거죠?"
대답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웨건이 먼저 문 쪽으로 발을 옮겼다.
"분위기가 스산한걸? 난 다른 방을 살펴보겠어."
그 말만 남기고 복도로 나갔다. 날쌘돌이 역시 대화를 이어 갈 생각은 없는 듯 책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좋아, 이곳을 털어보겠어."
지혜는 타이머와 뜯긴 페이지, 그리고 결말에 적힌 세 이름을 차례로 살폈다. 두 사람이 자신을 소개하며 한 말과 지금 하는 행동 사이에는 미묘한 어긋남이 있었다. 웨건은 집 안을 살피러 나갔고, 날쌘돌이는 서재에 남아 서랍과 책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지혜는 그 어긋남 속에서 이 모임의 겉모습을 하나씩 읽어 냈다.
유고를 정리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누군가는 시간을 재고 있었다. 결말에는 세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붙어 있었지만, 이름을 적은 필체는 서로 달랐다.
끝을 쓰는 사람이 셋인 게 아니었다.
끝을 두고 셋이 경쟁하는 자리였다.
그사이 날쌘돌이는 책장 한 칸 뒤에서 얇은 봉투 하나를 꺼냈다. 안에는 뜯겨 나간 다음 장과 같은 재질의 종이 조각이 들어 있었다. 가장자리의 섬유 역시 거칠게 일어나 있었다.
종이를 뒤집자 짧은 메모 한 줄이 나타났다.
결말 페이지에 없던 네 번째 이름은 아니었다.
"누구든 끝을 쓰면, 이 원고는 이 방에서 나가지 못한다."
날쌘돌이는 종이를 노트의 뜯긴 자리 옆에 잠시 맞춰 보았다. 종이결이 같았다.
한편 웨건은 복도를 돌며 차례로 문을 열었다. 계단을 내려가 아래층의 방을 확인한 뒤 다시 2층으로 올라와 복도 끝 방과 화장실, 빈 다용도실까지 살폈다. 서재를 제외한 방은 모두 열어 보았지만 어디에도 책은 없었다.
서재로 돌아오던 길에 그는 처음으로 문고리에 매달린 메모를 읽었다.
나흘 뒤 아침 인수.
이 집은 곧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
웨건은 손끝으로 구겨진 메모를 눌러 펴 두었다. 그리고 타이머 소리가 들려오는 서재로 돌아갔다.
서재 문 앞에서 웨건이 발을 멈췄다.
안에서 서랍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날쌘돌이는 책장 앞에 서 있었고, 지혜는 타이머와 노트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타이머가 놓인 자리 아래에는 먼지가 비껴 간 사각형 자국이 남아 있었다. 지금 놓인 위치와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누군가 최근에 타이머를 옮긴 흔적이었다.
웨건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날쌘돌이는 주머니 속 종이를 만지작거렸다.
타이머에는 이제 사십칠 분보다 조금 적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 장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 걸렸다 · 섬유가 아직 거친 다음 장
2화
📍 2층 복도 · 낮 · 그 사이 한 시간 조금 안
낮이었다. 빗소리는 어느새 잠잠해졌고, 2층 서재에는 책상 위 타이머가 째깍거리는 소리만 남아 있었다.
지혜와 날쌘돌이, 웨건은 결말 페이지가 펼쳐진 노트 앞에 섰다. 타이머 받침 아래로 드러난 사각형 자리에는 먼지가 없었다.
지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당신들이 여기 있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얼른 나가주셨으면 좋겠네요."
날쌘돌이는 그녀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시른데요."
웨건이 노트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이 책은 일단 내가 가지고 있을게. 자신 있으면 뺏어보던가."
그제야 날쌘돌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대는 누구요?"
지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저는 제자예요. 여러분들은 누구세요? 아까 왜 대답 안 해주셨죠?"
날쌘돌이는 대답 대신 책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자, 나는 다른 곳을 뒤져보겠다."
그가 가리킨 곳은 복도가 아니라 서재 안이었다.
웨건은 이미 손을 뻗어 노트를 덮고 있었다. 종이가 스치는 소리가 타이머의 째깍임 사이로 새어 나왔다. 날쌘돌이가 다가서기도 전에 웨건은 노트를 가슴에 눌러 안았다. 팔꿈치를 벌려 책상과 문 사이를 막아섰다.
"이 책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다들 신경 끄시지."
날쌘돌이는 웨건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바보들만 모여 있군, 츳츳."
그는 곧장 타이머 쪽으로 향했다.
받침을 들어 올리자 그 아래에 연필로 그은 짧은 선 하나가 나타났다. 선 끝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사십칠.
먼지 없는 사각 자국의 모서리와 맞닿은 곳에서 벽 쪽으로 가느다란 홈 하나가 이어졌다. 홈 안쪽에는 검은 점처럼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사람이 손가락으로 파낸 흔적은 아니었다.
날쌘돌이는 잠시 구멍을 들여다보다가 서랍 손잡이를 잡았다.
철제 손잡이가 살짝 끌리는 소리에 지혜가 고개를 돌렸다.
날쌘돌이는 서랍을 열지 않았다.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대신 화로 옆에 놓인 작은 상자를 뒤졌다. 그 안에서 낡은 필통 하나를 꺼냈다.
필통 안에는 먹이 반쯤 말라붙은 붓과 뜯긴 다음 장과 같은 재질의 종이 조각이 함께 들어 있었다.
지혜는 웨건의 손끝과 날쌘돌이가 쥔 필통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두 사람의 눈을 차례로 마주쳤다.
"일단 나갑시다. 우리 여기에 다 같이 있을 이유가 없어요."
웨건은 노트를 품은 채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나가면 이 종이만 두고 가는 셈이지."
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래서 나갑시다. 여기서는 세 사람이 한 페이지를 동시에 쥐려 합니다."
날쌘돌이는 필통을 주머니에 넣으려다 동작을 멈췄다.
"잠깐만."
그는 다시 타이머 앞으로 다가가 받침 아래의 홈에 손가락을 대 보았다.
구멍 깊숙한 곳에서 희미한 기계 냄새가 났다.
째깍.
타이머 바늘이 한 칸 움직였다.
그 순간 책장 한쪽에서 아주 가느다란 전기음이 뒤따랐다.
날쌘돌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녹음 장치는 이미 이 방 어딘가에 설치되어 있었다.
지혜는 그의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문고리에 걸린 메모를 가리켰다.
"이 집은 곧 남의 집이 됩니다. 그 전에 이 방 밖에서 말합시다. 결말 페이지는 펼치지 않은 채로."
웨건이 잠시 망설였다. 품에 안은 노트의 등이 그의 가슴에 닿아 있었다.
날쌘돌이가 먼저 문밖으로 나섰다.
웨건은 마지막으로 서재를 나왔다. 노트는 여전히 그의 품 안에 있었다.
세 사람이 복도로 나오자 타이머 소리는 오히려 더 또렷하게 들렸다.
서재 문은 닫히지 않은 채였다.
지혜는 복도 창 너머로 마당을 바라보았다.
처마 아래 작은 스피커 하나가 비에 젖어 있었다.
서재 안에서 들렸던 가느다란 전기음도 그쪽에서 이어지는 듯했다.
타이머에는 이제 사십칠 분보다 적은 시간만 남아 있었다.
이 장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3화
📍 2층 복도 · 낮 · 그 사이 이십 분쯤

낮이었다.
2층 복도 끝까지 타이머의 째깍임이 닿았다. 서재 문은 여전히 열린 채였다. 지혜와 날쌘돌이, 웨건은 복도 한가운데 서 있었고, 창밖 처마 아래 매달린 스피커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다.
날쌘돌이가 창밖을 가리켰다.
"저 녹음기는 뭐지."
지혜가 스피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목소리가 녹음되고 있는 것 같아요. 누가 여기에 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의도가 굉장히 불순해 보이네요."
웨건이 복도 끝 화장실 쪽으로 발을 옮겼다.
"진정하고 잠시만. 배가 아파서 말이지."
지혜의 시선이 그의 등을 따라갔다.
"그나저나 당신들이 누군지는 언제 대답해 주실 거죠?"
날쌘돌이가 지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네, 좀 똘똘한 것 같군."
웨건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다들 비켜."
몇 걸음 만에 화장실 문 앞에 닿았다.
날쌘돌이도 곧바로 뒤따라붙었다.
"흠."
날쌘돌이의 손이 웨건의 옷깃을 스쳤다.
웨건이 몸을 돌리기도 전에 품속에 넣어 둔 노트의 모서리가 밖으로 밀려 나왔다. 접힌 종이 사이로 결말 페이지 일부가 드러났다. 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이름을 쓴 필체는 서로 달랐다.
웨건은 결국 화장실 문손잡이를 잡지 못했다.
날쌘돌이는 노트를 빼앗지는 않았다. 드러난 페이지를 눈으로 훑은 뒤 웨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배가 아프다더니, 발은 화장실보다 빨랐군."
지혜는 두 사람을 보는 동안에도 귀를 창밖 스피커 쪽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녹음기... 스피커... 스승님이 둔 것은 아닐 텐데. 무슨 의도일까..."
그때 스피커에서 짧은 전기음이 흘러나왔다.
치직.
뒤이어 복도 바닥을 디디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 웨건의 발걸음이었다.
조금 전 그가 "배가 아파서"라고 말한 목소리까지 뒤섞여 흘러나왔다.
지혜의 등이 순간 굳었다.
녹음과 재생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누가, 왜 이런 장치를 설치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날쌘돌이의 손은 아직 웨건의 품 가까이에 머물러 있었다. 웨건은 노트를 다시 가슴에 단단히 눌렀지만, 한 번 드러난 필체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지혜가 창밖의 스피커를 가리켰다.
"지금 우리가 하는 말도, 아까 했던 말도 전부 남고 있어요."
웨건은 화장실 문을 열지 못한 채 복도에 서 있었다.
날쌘돌이는 필통에서 붓을 꺼내지는 않았다. 다만 노트를 펼치라는 듯 웨건을 바라보는 눈빛만은 분명했다.
복도 끝에서 타이머의 째깍임이 한 번 더 울렸다.
잠시 뒤 스피커가 다시 발소리를 흘려보냈다.
이번에는 세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하나뿐이었다.
이 장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4화
📍 2층 복도 · 낮 · 그 사이 이십 분쯤

낮이었다.
2층 복도 끝까지 타이머의 째깍임이 닿았고, 서재 문은 여전히 열린 채였다. 지혜와 날쌘돌이, 웨건은 복도 한가운데 서 있었다. 창밖 처마 아래 스피커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다.
웨건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하! 날쌘돌이, 그만하고 저쪽으로 가시지."
날쌘돌이는 태연하게 받아쳤다.
"난 근육질 남자가 좋더라."
지혜가 짧게 중얼거렸다.
"흉측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웨건은 화장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나 날쌘돌이는 여전히 바짝 따라붙어 있었다.
조금 전 웨건은 분명 저쪽으로 가라고 했다. 지금은 아예 붙잡히지 않으려 했다. 말과 행동 사이에는 미묘한 간극이 있었다.
웨건이 날쌘돌이의 어깨를 밀쳤다.
"그러게 달라붙지 말라니까. 남자끼리 뭐 하는 거야, 이게."
날쌘돌이는 쉽게 밀려나지 않았다.
오히려 손끝을 웨건의 허리와 겨드랑이 쪽으로 파고들었다.
웨건의 몸이 순간 비틀렸다. 팔에 힘이 빠지기도 전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때, 어때?"
그 순간 품에 눌러 두었던 노트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툭.
노트가 복도 바닥에 떨어졌다. 접혀 있던 종이가 풀리면서 결말 페이지가 그대로 펼쳐졌다.
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름을 쓴 필체는 모두 달랐다.
날쌘돌이는 곧바로 발을 올려 페이지를 밟았다. 종이가 신발 밑에 눌려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치직.
창밖 스피커에서 발소리가 흘러나왔다.
한 사람의 발소리였다.
지금 복도에 서 있는 세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
지혜가 귀를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스피커에서는 왜 한 사람 발소리밖에 안 들리는 걸까요?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소리를 되짚었다.
한 사람.
네 걸음.
조금 전 자신이 옮긴 걸음 수와 비슷했다.
지혜는 처음에는 자신의 발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녀가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창밖 처마 아래 스피커에서 늘어진 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선은 복도 바닥을 따라 이어지지 않았다. 열린 서재 문 안으로 들어가 책상 쪽으로만 뻗어 있었다.
끝은 타이머 받침 근처였다.
정확히는 받침 아래 먼지 없는 사각 자국 옆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지혜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녹음은 복도 전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소리를 받아들이는 장치는 타이머 근처에 있는 것 같았다.
웨건은 간지러움에 굽혔던 몸을 다시 펴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품은 비어 있었다.
결말 페이지는 날쌘돌이의 신발 밑에 깔려 있었다.
화장실 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웨건은 결국 손잡이에도 닿지 못했다.
날쌘돌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의 신발 아래로 세 사람의 이름과 서로 다른 세 필체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지혜는 다시 창밖의 스피커를 바라보았다.
되돌아온 발소리는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복도에는 셋이 서 있었다.
복도 끝에서 타이머가 다시 한 번 째깍였다.
남은 시간은 이미 사십칠 분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이 장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5화
📍 2층 복도 · 낮 · 그 사이 이십 분쯤
낮이었다. 2층 복도 한가운데, 결말 페이지는 날쌘돌이 신발 밑에 펼쳐져 있었다. 서재 문은 여전히 열린 채였고, 타이머 째깍임이 복도 끝까지 닿았다. 창밖 처마 아래 스피커는 잠잠했다.
웨건이 날쌘돌이를 가리켰다.
"너.."
날쌘돌이는 어깨를 움츠렸다.
"나 너무 무서워."
지혜가 짧게 중얼거렸다.
"남자들이란.."
웨건이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노트 겉표지를 집어 들었다. 페이지는 날쌘돌이 발밑에 남아 있었다. 그는 표지를 가슴에 끼고 지혜 쪽으로 두 걸음 다가섰다.
"우린 셋인데 왜 녹음기에는 자꾸 한 사람의 소리만 들리는 것 같지? 이상하지 않아?"
지혜가 창밖 스피커를 바라보았다.
"…맞아요. 아까부터 그랬죠."
날쌘돌이도 고개를 들었다. 방금까지 밟고 있던 종이를 잠깐 잊은 표정이었다.
웨건이 선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줄은 복도 바닥을 타지 않았다. 열린 서재 문 안, 책상 위 타이머 받침 쪽으로만 뻗어 있었다.
"녹음은 저기서만 받는 것 같아. 그래서 한 사람밖에 안 남는 거 아닐까."
치직.
스피커에서 발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번에도 하나뿐이었다. 셋이 동시에 귀를 기울이는 사이, 지혜가 날쌘돌이 발치로 몸을 던졌다.
"결말 페이지 이리 내요."
손가락이 종이 모서리에 닿았다.
날쌘돌이는 밟고 있던 페이지를 더 깊게 눌렀다. 신발 밑 종이가 바닥에 달라붙는 소리가 났고, 지혜의 손가락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지혜는 빈손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날쌘돌이가 갑자기 고개를 서재 쪽으로 돌렸다.
"크흠, 저기 서재에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은데~?"
웨건과 지혜의 시선이 동시에 서재 문 안으로 향했다.
그 틈에 날쌘돌이는 발을 들어 올렸다. 접힌 페이지를 주먹으로 쥐어 품속 깊이 넣었다. 주머니에서 필통을 꺼내 붓을 들었다. 등을 돌린 채, 아무도 보지 못한다고 믿으며 종이 위 이름 한 줄에 붓끝을 대었다.
지혜는 물러선 자리에서 그의 어깨만 바라보았다. 페이지는 이미 날쌘돌이 품 안에 있었다.
웨건은 노트 겉표지만 들고 서 있었다. 품은 비어 있었고, 바닥에도 결말 페이지는 없었다.
복도 끝에서 타이머가 다시 째깍였다. 남은 시간은 사십칠 분보다 더 줄어 있었다.
창밖 스피커는 또 한 사람의 발소리만 흘려보냈다. 그런데 복도에는 지금도 셋이 서 있었다.
이 장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6화
📍 2층 복도 · 낮 · 그 사이 십 분쯤
낮이었다. 2층 복도 한가운데, 날쌘돌이는 서재 쪽을 등지고 서 있었고, 지혜는 그의 어깨 뒤에, 웨건은 노트 겉표지만 든 채 한 걸음 떨어져 있었다. 복도 끝 타이머 째깍임이 이전보다 촘촘하게 닿았고, 창밖 처마 아래 스피커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다.
웨건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를 원망하지 마."
지혜도 같은 말을 내뱉었다.
"나를 원망하지 마."
웨건의 목소리가 더 거칠어졌다.
"너네 그러다 죽어."
날쌘돌이가 창밖을 올려다봤다. 빗줄기가 처마를 따라 흘렀다.
"오늘 날씨가 좋네~"
지혜가 책등을 움켜쥐었다.
"나는 경고했어."
책이 허공을 가르며 휘어졌다. 웨건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혜의 손목이 반동으로 튕겨 나갔고, 날쌘돌이 품속 종이에는 닿지 않았다.
그 순간 웨건이 달려들었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어. 더 이상 날 방해하지 마."
팔이 날쌘돌이의 목 뒤로 감겼다. 레슬링 기술의 궤적이었다. 그러나 날쌘돌이는 RKO가 닿기 전 몸을 비틀었다. 손이 먼저 풀렸고, 웨건의 발목이 헛디뎠다.
날쌘돌이는 복도 바닥을 내려다봤다. 바닥 나무판 사이 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깊이였다. 접힌 페이지를 움켜쥔 손을 틈 아래로 넣었다. 종이가 빈 공간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붓만 주머니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지혜는 물러서며 바닥을 보았다. 붓 뚜껑이 굴러 멈춰 있었고, 나무 바닥 위에 잉크 방울이 아직 마르지 않았다.
치직.
창밖 스피커에서 전기음이 한 번 스쳤다. 복도 끝 타이머 째깍임이 끊겼다.
딸깍.
벽시계가 울렸다. 처마 아래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작가의 목소리였다. 결말 다음 문장을 읽기 시작했다.
날쌘돌이 품속에는 페이지가 없었다. 바닥판 틈 너머였다. 웨건은 빈 손으로 스피커를 바라보았고, 지혜는 마르지 않은 잉크 방울과 굴러간 뚜껑 사이에서 붓 냄새만 알아냈다.
이 장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7화
📍 2층 복도 · 낮 · 그 사이 이십 분쯤
낮이었다.
2층 복도 끝, 서재 문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책상 위 타이머는 멈춰 있었고, 받침 아래의 LED만 켜져 있었다.
창밖 처마 아래 스피커에서는 작가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잠깐… 작가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뭐라고 했죠?"
날쌘돌이가 손가락을 입술 앞에 세웠다.
"쉿! 들어보자."
웨건은 스피커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작가는 분명 죽었는데."
목소리는 고르지 않은 리듬으로 끊겨 흘러나왔다. 빗물에 젖은 스피커 탓인지 몇몇 단어는 뭉개졌지만, 틈마다 반복되는 낱말만큼은 분명했다.
범인.
이름.
틀렸.
지혜는 창틀 가까이 몸을 기울여 귀를 댔다.
"작가님 목소리가 어떻게…"
그녀는 끊어진 문장 사이를 하나씩 이어 보았다.
작가는 결말 페이지에 적힌 세 이름을 읽고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이름들을 부정하고 있었다.
범인이라 적힌 이름은 처음부터 틀렸다.
끝을 쓰는 사람만이 원고에 남는다.
그리고 그 끝은 이 방을 떠나지 못한다.
지혜는 귀를 떼지 않은 채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
바닥에는 작은 잉크 방울들이 떨어져 있었다. 흔적은 붓을 지닌 사람이 서 있던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끊겨 들려오는 목소리 사이사이로 그녀의 시선도 그 방향을 따라 움직였다.
그사이 웨건은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혜 쪽으로 다가가려던 사람이었지만, 이번에는 곧장 타이머 받침 앞으로 향했다.
"기술 걸어서 미안했어. 민첩하게 피했지만 말이야. 하하하."
웨건은 무릎을 꿇고 받침 아래의 작은 구멍과 켜진 LED를 들여다보았다.
안쪽 배선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을 집어넣을 수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타이머 바늘이 멈춘 순간.
받침 아래 LED가 켜진 순간.
그리고 처마의 스피커에서 작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순간.
세 시점이 거의 겹쳐 있었다.
같은 순간,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날쌘돌이는 지혜의 뒤쪽으로 조용히 다가섰다.
지혜의 시선은 여전히 창밖 스피커에 붙들려 있었다. 한 손은 품에 안은 책등을 받치고 있었고, 몸은 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창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날쌘돌이는 그녀의 움직임을 살폈다.
다음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왼발에만 무게가 실릴 터였다.
그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
지혜가 한 단어를 놓치지 않으려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그때였다.
날쌘돌이의 손가락이 책등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종이 묶음이 지혜의 팔에서 소리 없이 빠져나왔다.
지혜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날쌘돌이는 빼낸 책을 허리 뒤로 숨겼다. 동시에 주머니 밖으로 삐져나온 붓 몸통을 손바닥으로 눌러 가렸다.
붓끝의 잉크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다시 바닥으로 향했다.
바닥판 틈 근처에 떨어진 잉크 방울.
조금 전 자신이 숨긴 페이지에 묻은 것과 같은 색이었다.
하지만 책등 가장자리에도 같은 빛깔의 얼룩이 번져 있었다.
날쌘돌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숨긴 페이지는 자신의 발밑에 있지 않았다.
흔적은 바닥판 틈 너머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손에 넣은 이 책은, 그 페이지와는 별개의 증거였다.
치직.
스피커에서 짧은 전기음이 한 번 스쳤다.
타이머 받침 아래 LED가 두 번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꺼졌다.
복도가 잠시 조용해졌다.
서재 안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소리가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창밖 스피커에서는 작가의 목소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재생은 계속되고 있었다.
반면 타이머 아래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녹음이 시작되지 않는 듯했다.
웨건은 불이 꺼진 받침 앞에서 몸을 일으켰다.
작은 구멍의 정체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지혜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범인이라 적힌 이름은 처음부터 틀렸대요. 끝을 쓰는 사람만 남는다고."
날쌘돌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허리 뒤에 숨긴 책등이 등에 단단히 닿아 있었다.
지혜는 무심코 두 손을 모았다.
손바닥 사이가 비어 있었다.
그제야 표정이 굳었다.
"책이…"
날쌘돌이는 모르는 척 창밖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그치면 소리가 더 선명해질 거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작가의 목소리는 끊기지 않았다.
하지만 복도 바닥판 틈 가까이에 떨어진 잉크 방울은 이미 가장자리부터 천천히 말라 가고 있었다.
이 장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 풀렸다 · 복도 바닥판 틈 아래로 빠진 결말 페이지
8화
📍 2층 복도 · 낮 · 그 사이 삼십 분쯤
낮이었다. 2층 복도 서재 문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책상 위 타이머의 바늘은 멈춰 있었고, 받침 LED는 꺼진 채였다. 창밖 처마 아래 스피커만 작가의 목소리를 이어 가고 있었다.
날쌘돌이가 먼저 소리쳤다.
"젠장! 저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그는 스피커 쪽으로 한 걸음 나갔다.
"당신들 저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
웨건은 손을 들어 보였다.
"다들 진정해!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말은 거칠었지만, 그의 발은 타이머가 있는 서재 문턱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지혜가 고개를 기울였다.
"흠.. 범인이 틀렸다라..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스피커에서 '틀렸'과 '끝'이라는 낱말이 또 끊겨 나왔다. 젖은 스피커라 몇 음절은 흐려졌지만, 결말 페이지의 세 이름과는 이어지지 않는 문장이었다.
지혜는 멈춘 타이머를 바라보았다.
"이 타이머의 시간은 뭘까요. 다 지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잉크가 마르는 데 걸리는 시간 같지 않아요?"
그 말이 나온 순간, 날쌘돌이의 고개가 허리 쪽으로 돌아갔다.
한 박자 늦었다.
그는 다시 창밖을 보려 했지만, 이미 지혜의 시선이 그의 어깨 뒤로 향해 있었다. 허리 뒤 책등은 등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옮기려던 손은 주머니 끝에서 붓 몸통만 더 깊이 눌렀을 뿐, 책은 그 자리에 남았다.
지혜는 바닥의 잉크 방울을 보았다.
가장자리가 맺혀 있었다. 아직 완전히 굳지는 않았지만, 방금 전보다 두껍게 말라 가고 있었다.
그녀는 멈춘 바늘과 LED, 그리고 끊기지 않는 재생 사이에서 줄을 이었다.
타이머가 가리키던 시간은 앞으로 남은 시간이 아니었다.
이미 끝난 시간이었다.
끝나기 전까지는 붓으로 고칠 수 있었고, 끝난 뒤에는 잉크만 마르는 시간이 남았다. 지금 셋이 서 있는 복도는, 수정의 마지막 창이 닫힌 직후였다.
그러나 잉크는 아직 살아 있었다.
바닥판 틈 옆 방울과, 날쌘돌이 주머니 밖으로 삐져나온 붓끝, 허리 뒤 책등 가장자리의 얼룩은 같은 색이었다. 틈 아래로 숨긴 페이지와도 한 줄기였다.
지혜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아직이에요. 완전히 마르기 전이에요."
지혜의 깨달음이 열어 준 문이었다. 필체가 지워지기 전, 바닥판 틈 아래 종이를 다시 건드릴 수 있는 짧은 틈.
웨건은 타이머 받침을 바라본 채 입만 열었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멈춘 바늘.
꺼진 LED.
멈추지 않는 스피커.
셋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지만, 그의 눈앞에서는 이 셋이 한 줄로 겹쳐졌다. 새 시간이 시작된 게 아니라, 끝난 구간의 목소리만 복도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진정하라고 말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날쌘돌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혜가 허리 뒤를 본 뒤였다. 자신이 고개를 돌린 타이밍이 그녀의 질문과 맞물렸다는 것을, 그는 한참 뒤에야 알아챘다.
치직.
스피커에서 전기음이 한 번 스쳤다. 이번에는 단어 하나가 아니라 문장 통째로 흘러나왔다.
"누구든 끝을 쓰면, 이 원고는 이 방에서 나가지 못한다."
목소리는 작가의 것이었지만, 문장은 책장 뒤 봉투 메모와 같은 문법이었다. 복도에서 몇 단어가 끊겼지만, '나가지 못한다'는 네 글자만큼은 또렷했다.
그 사이 1층 현관 쪽에서 초인종이 한 번 울렸다.
비가 그친 뒤 처음이었다. 셋이 동시에 계단 방향을 돌아보았지만, 문을 여는 발소리는 없었다. 울림만 복도 아래로 내려갔다.
지혜의 두 손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날쌘돌이 허리 뒤에는 책이 남아 있었다.
바닥판 틈 가까이 잉크 방울 하나가 겉부터 말라 가는 참이었다. 가장자리가 갈라지기 시작하면, 틈 아래 필체는 종이만으로는 누구 것인지 말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스피커는 멈추지 않았다.
초인종의 울림은 이미 사라졌지만, 문밖에는 아직 발소리가 없었다.
이 장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9화 · A쪽
📍 1층 현관 · 낮 · 그 사이 이십 분쯤
낮이었다. 2층 복도 서재 문 앞에는 지혜만 남아 있었다. 멈춘 타이머 너머 서재에서는 남자 둘의 목소리가 낮게 새어 나왔고, 무슨 말인지는 여기까지 들리지 않았다. 바닥판 틈 옆 잉크 방울은 겉부터 말라 가고 있었고, 가장자리에 가는 갈라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혜는 복도 끝으로 고개를 숙였다. 1층 현관 쪽에서 초인종이 두 번째로 울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짧게 끊기지 않고, 눌린 채 멈추지 않았다.
조금 전, 셋이 아직 이 자리에 있을 때였다.
"책은 잠깐 내려놓고, 우리 현관 문으로 가보지 않을래요? 여자 혼자 가기엔 무서워요."
대답은 없었다. 남자 둘은 서재 쪽으로 시선을 돌린 채 문턱에 남아 있었고, 지혜는 빈 두 손을 한 번 보았다. 책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래도 그녀는 계단 쪽으로 발을 옮겼다.
복도를 비우자, 창밖 스피커의 작가 목소리가 복도 벽을 타고 더 또렷해졌다. 위층에서는 누군가 타이머 받침 쪽으로 기웃거리는 소리가 스쳤지만, 지혜는 내려가는 쪽만 바라보았다.
계단을 내려서자 초인종 소리가 귀를 때렸다. 현관문 유리 너머에는 우산을 든 그림자가 서 있었다. 발소리는 없었다. 누군가 울리고 떠난 게 아니라, 아직 문밖에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혜는 문틈부터 읽었다.
문패 아래 나무 문틀 안쪽에 빗물 자국이 얇게 번져 있었다. 문을 열지 않고도, 방금 전까지 우산이 기대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현관 매트에는 젖은 반달 하나가 남아 있었고, 굳기 시작한 바깥 먼지와 섞여 있었다. 발등 바깥쪽만 젖은 형태였다. 안으로 들어온 걸음은 아니었다.
초인종 버튼 위에는 손가락 끝 네 개의 지문이 겹쳐 있었다. 새 것이었다. 비닐 장갑 자국은 없었다.
지혜는 무릎을 꿇고 우편함 슬롯을 열었다.
빗물에 젖은 봉투 한 장이 걸려 있었다. 출판사 로고가 찍힌 회색 봉투였다. 겉면에는 필적 감정 재방문, 오늘 오후라고 적혀 있었고, 받는 사람 칸에는 이 집 주소만 있었다. 보낸 사람 이름은 없었다. 봉투 모서리에는 검은 잉크 점 하나가 말라 가고 있었다. 복도 바닥 방울과 같은 색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봉투 뒤쪽에 끼워진 작은 종이가 하나 더 있었다. 나흘 뒤 인수라고 문고리에 걸려 있던 일정과 같은 글씨체였지만, 날짜는 오늘로 바뀌어 있었다. 아래에는 원고실 포함, 열쇠 일괄 인도라고 적혀 있었다.
지혜는 종이를 집어 들었다.
2층에서는 스피커가 같은 문장을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누구든 끝을 쓰면, 이 원고는 이 방에서 나가지 못한다. 문장 호흡은 책장 뒤에 걸린 메모와 같았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끊겼다.
유리 너머 우산 그림자가 한 걸음 물러섰다. 문손잡이는 아직 돌아가지 않았지만, 바깥에서 금속이 맞닿는 소리가 났다. 한 번. 두 번.
지혜는 봉투를 품에 안은 채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복도 바닥판 틈 옆 잉크 방울은 그 사이 더 굳어, 갈라진 가장자리가 틈 아래 종이 쪽으로 번져 있었다.
현관문 밖에서는 발소리가 아직 들리지 않았다. 대신 문손잡이가 돌아가기 직전이었다.
이 장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9화 · B쪽
📍 2층 서재 · 낮 · 그 사이 이십 분쯤
낮이었다. 2층 서재에는 날쌘돌이와 웨건만 남아 있었다. 책상 위 결말 노트는 펼쳐진 채 둘 사이에 놓여 있었고, 멈춘 타이머 너머 창밖 스피커는 작가의 목소리를 끊지 않고 있었다. 1층 현관 쪽 초인종은 두 번째로 울리고 있었고, 이번에는 짧게 끊기지 않고 눌린 채였다.
날쌘돌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야, 누구지?"
그는 문 쪽을 힐끗 보았다. 초인종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매력적인 웨건이 누군지 확인해 보는 게 어때."
웨건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는 결말 노트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날쌘돌이, 너의 목적이 뭐야. 난 이제 지쳤어. 너를 도와줄게."
날쌘돌이는 어깨를 움츠렸다.
"무서운데, 혹시 범인이 아닐까?"
말은 현관 쪽을 향했지만, 그의 손은 허리 뒤 책등 쪽으로 갔다. 웨건의 목소리가 귀에 붙는 동안, 그는 책장 사이 더 깊은 틈으로 종이 묶음을 밀어 넣었다.
붓끝이 책등을 스쳤다.
검은 잉크가 나무 가장자리에 짧은 줄을 남겼다. 웨건은 손 움직임 끝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주머니 밖으로 삐져나온 붓 몸통과 바닥에 맺힌 잉크 방울, 방금 새로 번진 책등 줄이 같은 색임을 알아챘다.
웨건은 목소리를 낮췄다.
"솔직히 말해. 유서 정리도, 결말의 이름도, 네가 손대야 하는 거잖아."
날쌘돌이는 잠깐 입술을 깨물었다. 그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름을 바꿔야 해. 그대로 나가면 살아 있는 사람이 범인으로 남아."
그는 바닥판 틈 쪽은 말하지 않았다. 허리 뒤가 비었을 뿐, 숨긴 페이지는 여전히 발밑 아래에 있었다.
웨건은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그럼 같이 하자. 대신 네가 숨기는 것도, 왜 숨기는지도. 조금씩은 말해."
날쌘돌이는 대답 대신 책장을 눌러 잉크 줄을 가렸다. 협력은 받아들였지만, 누구의 이름을 지우려 하는지는 아직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끊겼다.
서재 안이 한 박자 비었다. 아래층에서 금속이 맞닿는 소리가 났다. 한 번, 두 번. 현관문이 밖에서 열리는 소리였다.
치직.
스피커가 같은 대목을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누구든 끝을 쓰면, 이 원고는 이 방에서 나가지 못한다."
문장 호흡은 책장 뒤 봉투 메모와 같았다. 나흘 뒤라던 인수가 오늘일 수도 있다는 말은, 이 방에 있는 둘에게는 아직 닿지 않았다.
계단을 밟는 소리가 올라왔다.
한 걸음.
두 걸음.
발소리는 복도를 지나 서재 문 앞에서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이 장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10화
📍 2층 서재 · 낮 · 그 사이 이십 분쯤
낮이었다. 2층 서재 문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책상 위 결말 노트는 여전히 펼쳐져 있었고, 멈춘 타이머 너머 창밖 스피커만 작가의 목소리를 이어 가고 있었다. 복도 아래에서 올라온 발소리는 서재 문 앞에서 잠깐 멈춘 뒤, 다시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날쌘돌이가 먼저 웨건을 바라보았다.
"웨건, 너가 나가보자. 누군지 확인해봐."
지혜는 품속 봉투를 한 번 누른 채 그에게로 몸을 돌렸다.
"웨건, 너 나한테 할 말 있지 않아??"
웨건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낮게 내뱉었다.
"….다들 누구야."
그러고는 문 쪽을 보았다. 발소리는 한 사람 분량이었다. 속도도 일정했다. 스피커가 되돌려 주던 한 사람의 걸음과는 달랐다. 재생 잔향이 아니었다. 방어 자세를 풀어도 되는 쪽이었다.
"잠깐, 발소리가 이쪽을 향해 오는 거 같아."
그 말을 듣자 날쌘돌이의 어깨가 내려갔다. 조금 전 서재에서 받아들인 협력 말이, 지금은 거짓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책상 위 펼쳐진 페이지를 가리키며 문 쪽으로 소리쳤다.
"어이!! 밖에 누구냐!!"
목소리는 복도 벽을 치고 돌아왔다. 창밖 스피커는 아무것도 되돌려 주지 않았다. 셋이 서 있는 복도에는, 방금 고함친 사람의 목소리만 남았다.
지혜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계단 쪽으로 발을 옮겼다.
조금 전 현관에서 본 우산 자국과 네 겹의 지문, 그리고 품에 넣은 회색 봉투가 같은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올라오는 발소리와 먼저 맞닿으려면, 위층 문 앞이 아니라 아래에서 막아야 했다.
그 사이 2층 서재 안이었다.
날쌘돌이가 가리킨 결말 페이지 위에는 세 이름이 아직 마르지 않은 필체로 남아 있었다. 스피커는 같은 문장을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누구든 끝을 쓰면, 이 원고는 이 방에서 나가지 못한다."
문장 호흡은 책장 뒤 봉투 메모와 같았다. 펼쳐진 종이의 세 이름과, 공중에서 읽히는 문장이 같은 책상 위 공기를 나누고 있었다.
복도 바닥판 틈 옆 잉크 방울은 겉부터 더 굳어 있었다. 가장자리 갈라짐이 틈 아래 종이 쪽으로 번져, 필체를 지울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다.
지혜는 계단을 내려갔다.
1층 현관문을 열자, 비닐 필통과 클립보드를 든 남자가 마지막 계단 위에 서 있었다. 회색 외투 어깨에는 빗물이 말라 가고 있었고, 봉투 겉면과 같은 출판사 로고가 명함에 찍혀 있었다. 필적 감정 재방문이라고 적힌 봉투와, 날짜만 오늘로 바뀐 인수 쪽지는 지혜 품속에서 같은 색 잉크 점을 맞추고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오늘 오후라고 되어 있어서요. 필적부터 봐야 해서."
위층에서는 날쌘돌이의 고함이 한 번 더 울렸다. 이번에도 복도에 남는 것은 그의 목소리뿐이었다.
지혜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남자의 시선이 그녀 품속 봉투로 향하는 것을, 그녀는 먼저 알아챘다.
그때 2층 서재 문고리가 돌아갔다.
문밖 사람이 문을 연 것이 아니었다. 안에서 열린 것이었다. 웨건이 손을 뗀 순간, 복도에 서 있던 발소리가 문틈으로 들어왔다. 한 사람이 아니라, 계단과 복도와 스피커가 겹친 듯한 숨소리였다.
펼쳐진 결말 페이지, 책상 위 멈춘 타이머, 창밖에서 같은 문장을 읽는 목소리.
셋이 한 테이블 위에서 맞닿았다.
남자가 필통을 열었다. 돋보기와 샘플지가 나왔고, 그의 눈은 아직 서재 문 너머 펼쳐진 페이지를 보지 못했다. 대신 지혜 품속 봉투 모서리의 잉크 점을 먼저 보고 있었다.
위층 복도에서 발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현관 앞 남자는 서재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 장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 풀렸다 · 현관 우편함의 출판사 봉투와 인수 일정 변경 쪽지
11화
📍 2층 서재 · 낮 · 그 사이 십 분쯤
낮이었다. 2층 서재 문은 안에서 연 채였다. 책상 위 결말 페이지의 세 이름은 아직 마르지 않았고, 멈춘 타이머 옆에서는 창밖 스피커만 같은 문장을 반복하고 있었다. 웨건과 날쌘돌이는 문틈 사이를 바라보고 있었고, 계단 아래에서는 지혜와 필통을 든 남자의 숨소리가 올라왔다.
날쌘돌이가 문손잡이를 잡았다.
문을 더 밀자 복도 공기가 서재 안으로 들어왔다. 계단 첫 칸에 선 남자의 회색 외투 어깨는 말라 가고 있었고, 명함의 출판사 로고는 지혜 품속 봉투와 같았다. 필통 안 샘플지 뭉치 모서리는 눌려 있었고, 클립보드에는 필적 감정, 재방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날쌘돌이는 그것만 보고 멈추지 않았다.
샘플지 첫 장 모퉁이 라벨을 읽었다. 오늘 수령, 세 필체 대조. 그 옆 칸에는 원고 훼손 의심이라고 적혀 있었다. 비어 있는 네 번째 줄이 있었다.
"필적 감정 오신 거 맞죠. 위에 펼쳐진 페이지, 세 이름부터 보시려는 거죠."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놀란 표정이었지만, 발은 계단에서 떼지 않았다.
웨건이 날쌘돌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날쌘돌이, 이제 어쩔 작정이야."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그러나 문 앞에 선 남자와 계단 아래 지혜까지 같은 문장을 받았다.
날쌘돌이는 시선을 페이지에서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같이 막을 순 없어. 대신 이름부터 바꿔야 해. 지금."
누구의 이름인지는 없었다. 바닥판 틈 이야기도 없었다. 그러나 조금 전 협력 약속보다 더 앞선 말이었다.
그 사이 1층 계단이었다.
지혜는 남자 앞에 섰다. 서재 사람들이 결말 페이지를 수정하지 못하게 막아 달라고, 말을 골라 부탁하려 했다.
"선생님, 위에서 아마—"
"존댓말이 작가 선생님하고 비슷하네요."
남자가 지혜의 붕대 감긴 오른손목을 보았다.
"제자분이세요?"
지혜의 입이 닫혔다.
질문은 계단참을 타고 올라갔다. 복도 벽에 부딪혀 서재 문 안까지 새었다.
웨건의 어깨가 굳었다.
날쌘돌이는 붓이 묻은 손가락을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끝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건가."
남자가 중얼거린 말이 아니었다. 위층에서 들은 것이었다.
지혜는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부탁 대신 자신의 자리를 먼저 드러낸 셈이었다.
남자는 필통에서 돋보기를 꺼냈다.
"일단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그는 계단을 올랐다. 서재 문턱에 닿자, 펼쳐진 결말 페이지 위 세 필체 중 가장 검은 줄을 샘플지에 대었다. 잉크는 아직 번져 있었다.
스피커는 같은 문장을 또 읽기 시작했다.
"누구든 끝을 쓰면, 이 원고는 이 방에서 나가지 못한다."
문장 호흡은 책장 뒤 봉투 메모와 같았다. 타이머 받침 아래 녹음 구멍은 LED 없이 검은 입만 남아 있었고, 새 소리는 나지 않았다. 방문객이 샘플지 위로 숨을 내쉬는 소리만 서재 안을 채웠다.
복도 바닥판 틈 옆 잉크 방울은 겉이 더 굳어, 갈라진 가장자리가 틈 아래 종이 쪽으로 번져 있었다.
이 장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12화
📍 2층 서재 · 낮 · 그 사이 십 분쯤
낮이었다. 2층 서재 문턱에는 필통을 든 남자가 서 있었고, 안쪽에는 웨건과 날쌘돌이가, 계단 쪽에는 지혜가 남아 있었다. 돋보기 아래 샘플지는 펼쳐진 결말 페이지의 가장 검은 줄에 닿아 있었고, 바닥판 틈 옆 잉크는 갈라진 가장자리가 틈 아래 종이로 번져 있었다.
남자가 먼저 말했다.
"가운데 이름입니다. 오늘 새로 붓을 댄 줄은 이 필체예요."
웨건은 명함, 지혜 품속 봉투, 클립보드를 차례로 보았다. 재방문 도장 날짜는 맞았다. 출판사 로고도 같았다. 그러나 네 번째 칸만 비어 있었고, 남자의 눈이 주머니 밖으로 삐져나온 붓 몸통에 잠깐 머물렀다.
웨건이 앞으로 나섰다.
"진짜 감정사는 맞는 거야?"
남자는 명함을 건넸다. 재방문 확인란에 오늘 날짜가 찍혀 있었다. 웨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필통 바닥에 끼워 둔 두 번째 봉투를 꺼냈다. 로고는 같았지만 라벨에는 유족 쪽지라고 적혀 있었다. 감정사는 진짜였다. 부른 사람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 사이 지혜가 말을 이었다.
"잠깐만요. 위에서 손대지 마세요. 잉크가 아직—"
"제자분 맞죠?"
"손대지 말라고요. 지금 번지면—"
"끝을 아는 사람이라면 더 말해야—"
"한 줄만 더요. 한 줄만 기다리—"
지혜는 세 사람의 시선을 번갈아 붙잡았다. 남자는 돋보기를 들었지만 페이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웨건은 명함을 접는 손을 멈췄고, 날쌘돌이는 붓을 꺼내는 동작을 반 박자 늦췄다. 잉크 방울의 갈라진 가장자리는 더 굳어 가고 있었다.
날쌘돌이가 돌아섰다.
"으랴랴랴랴랴랴!"
그의 팔이 남자의 어깨를 밀었다. 남자는 클립보드를 가슴에 끌어안은 채 계단 모퉁이로 넘어졌다. 짧게 신음하고는 늘어졌다. 기절이었다. 클립보드는 바닥에 떨어졌다.
종이가 펼쳐졌다. 원고 훼손 의심 옆 네 번째 칸에 검은 잉크가 손바닥 모양으로 찍혀 있었다. 날쌘돌이의 붓 묻은 손과 같은 색이었다.
날쌘돌이는 멈추지 않았다. 쓰러진 남자 손에서 돋보기를 떼어 책상으로 갔다. 펼쳐진 결말 페이지 가운데 줄— 방금 남자가 오늘 새 필체라고 짚은 이름— 위에 붓끝을 댔다. 지혜가 "안 돼"라고 외치는 사이, 획 하나가 번졌다. 번진 잉크는 방금 찍힌 손바닥 자국과 같은 줄기였다.
웨건은 두 장의 명함과 봉투를 펼친 채 서 있었다. 유족 쪽지와 출판사 봉투. 부른 이가 둘이면, 오늘 이 집에 온 이유도 둘일 수 있었다.
지혜는 페이지 앞에 섰지만, 가운데 이름의 끝 획은 이미 퍼져 있었다.
창밖 스피커가 같은 문장을 또 읽기 시작했다.
"누구든 끝을 쓰면, 이 원고는 이 방에서 나가지 못한다."
문장 끝에 짧은 침묵이 붙었다. 타이머 받침 아래 녹음 구멍에서 전자음이 한 번 울리고 멈췄다. LED는 여전히 꺼져 있었다. 새 녹음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구멍 속에서 카세트가 한 칸 돌아간 소리만 남았다.
복도 바닥판 틈 옆 잉크 방울은 거의 말랐다. 틈 아래 페이지는 손대기 어려운 상태였고, 책상 위 페이지만 아직 번질 수 있었다.
날쌘돌이는 붓을 들고 있었다. 클립보드 네 번째 칸의 손바닥 자국은 마르지 않았다.
이 장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 풀렸다 · 타이머 받침 아래 녹음용 구멍
13화
📍 2층 서재 · 낮 · 그 사이 이십 분쯤
낮이었다. 2층 서재 바닥에는 손바닥 잉크가 찍힌 클립보드가 펼쳐져 있었고, 계단 모퉁이에는 필통을 든 방문객이 쓰러진 채 숨을 내쉬고 있었다. 책상 위 가운데 이름 끝 획은 번진 채 말라 가고 있었고, 창밖 스피커만 같은 문장을 반복하고 있었다. 웨건과 날쌘돌이는 책상 앞, 지혜는 계단 쪽에 서 있었다.
날쌘돌이가 붓을 든 손을 들었다.
"아무도 오지 마!!"
웨건은 책장을 훑으며 입을 열었다.
"책은 지금 어디 있지?"
날쌘돌이는 바닥판 틈 쪽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나한테 다가오면 가만히 안 둘 거야."
지혜는 쓰러진 방문객 쪽으로 몸을 숙였다. 말이 두 번 끊겼다.
"책은 혀."
"책은."
그다음 목소리만 커졌다.
"책은 집 밖에 있어!! 당장 나가 봐."
웨건은 잠깐 멈춰 서 있었다.
"하… 세상 어지럽네."
지혜가 집 밖이라 한 말이 먼저 움직였다. 웨건은 클립보드를 지나쳐 복도로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 현관 쪽을 뒤지기 시작했다. 우편함, 신발장, 문밖 매트. 손이 닿는 곳마다 책등은 없었다. 위층 서재에는 붓 소리도,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닥판 틈 옆 잉크 방울과 손바닥 자국만 시간을 먹고 있었다.
그 사이 서재 안이었다.
날쌘돌이는 "후욱후욱" 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손가락 끝을 틈에 넣자, 거의 말라붙은 종이 가장자리가 살짝 들렸다. 복도 바닥판 틈 아래에 숨겨 둔 결말 페이지였다. 그는 종이를 빼내 책장 깊숙이 꽂혀 있던 책을 꺼냈다. 지혜가 던졌다가 사라진 그 책이었다. 마지막 페이지가 비어 있던 자리에, 방금 뺀 종이를 붙였다. 가운데 이름 위 번진 획과 같은 잉크 줄기였다.
지혜는 방문객의 턱을 받치고 손목 맥을 짚었다. 호흡은 얕지만 규칙적이었다. 그녀는 필통을 옆으로 밀고 어깨를 두드렸다. 한 번, 두 번.
방문객의 눈꺼풀이 떠올랐다.
남자는 먼저 바닥을 보지 않았다. 펼쳐진 클립보드를 집어 들었다. 네 번째 칸의 손바닥 잉크를 손끝으로 더듬으며 입을 열었다.
"네 번째 칸… 누구 이름입니까."
그 말은 계단참까지 올라갔다. 지혜가 막으려던 질문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필통 바닥에서 유족 쪽지 봉투를 꺼내, 출판사 로고와 다른 날인을 나란히 펼쳤다.
"유족은 가운데 줄이 오늘 쓴 필체라고 부탁했습니다. 출판사는… 세 줄 전부를 봐 달라고 했고요."
부른 이는 둘이었지만, 보고 싶은 줄은 달랐다.
창밖 스피커가 문장 중간에서 끊겼다. 이번에는 처음부터가 아니었다. "누구든 끝을—" 다음 음절만 반복되다, 처마 아래 젖은 스피커에서 물기 섞인 전자음이 한 번 튀었다. 타이머 받침 아래 녹음 구멍에서는 카세트가 다시 한 칸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LED는 여전히 꺼져 있었다.
날쌘돌이는 책등을 책장에 다시 밀어 넣었다. 붙인 페이지는 겉표지 사이에 숨었다. 웨건이 현관에서 돌아오는 발소리가 복도 끝에 닿을 때, 서재 안에는 클립보드와 방문객, 책장 속 종이만 남아 있었다.
방문객은 손바닥 자국이 찍힌 종이를 들고 서재 문턱에 섰다. 책상 위 가운데 이름과, 방금 숨겨진 책 속 이름은 아직 서로 다른 종이였다.
이 장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 풀렸다 · 처마 아래 비에 젖은 스피커
14화
📍 2층 서재 · 낮 · 그 사이 몇 분
낮이었다. 2층 서재였다. 웨건은 현관에서 올라와 복도 끝에 섰고, 방문객은 손바닥 잉크 클립보드를 든 채 문턱에, 날쌘돌이는 붓을 쥔 채 책장 앞에 남아 있었다. 지혜는 계단 모퉁이에 서 있었고, 책상 위 가운데 이름 끝 획은 거의 말라 있었다. 창밖 스피커는 "누구든 끝을—" 다음 음절만 끊겨 반복하고 있었다.
웨건이 지혜를 봤다.
"이 계집이 감히 나를 속여!!???"
날쌘돌이는 붓 손을 책등 쪽으로 가렸다.
"그걸 속네."
웨건은 계단 쪽으로 몸을 틀었다. 현관 매트와 우편함을 뒤진 손이 아직 차가웠다. 위층에서는 붓 소리도, 숨소리도 없었다. 책은 밖에 없었고, 그 말을 한 사람은 지금도 가만히 서 있었다.
"상대를 봐가면서 속여야지. 사람 잘못 봤어."
웨건의 팔이 뻗었다. 지혜는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 붕대 감긴 오른손은 내려져 있었고, 눈만 움직였다.
주먹이 턱 아래에 닿았다.
지혜의 무릎이 먼저 꺾였다. 등이 계단 난간에 부딪히며 클립보드 쪽으로 기울었다. 방문객이 들고 있던 종이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바닥에 펼쳐지자 네 번째 칸 손바닥 자국이 하늘을 향했다. 잉크는 아직 어두웠다.
날쌘돌이는 책장 앞에서 허리를 숙였다. 지혜가 움직이지 않을 줄, 분노는 계단 쪽으로 갈 줄, 그 두 가지만 먼저 짚고 있었다. 붓 몸통은 책등과 겉표지 사이를 가린 채였다.
웨건은 숨을 고르며 주먹을 펴지 않았다.
방문객은 쓰러진 지혜를 보지 않았다. 먼저 바닥의 클립보드를 집어 들었다. 손바닥 자국을 위로 돌린 다음, 책장을 가리켰다.
"마지막 페이지에 붙인 종이. 직접 꺼내 주시겠습니까."
유족 쪽지와 출판사 봉투는 그의 필통 바닥에 그대로였다. 부른 이는 둘이었고, 보고 싶은 줄은 하나였다. 그러나 네 번째 칸은 비어 있지 않았고, 손바닥 모양만 이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타이머 받침 아래 녹음 구멍에서 카세트가 한 칸 돌아갈 준비음이 났다. LED는 여전히 꺼져 있었다. 스피커는 끊긴 문장 중간만 다시 읽기 시작했다.
"누구든 끝을—"
날쌘돌이의 붓 손가락이 책등에 더 밀착했다. 책장 속 마지막 페이지와 책상 위 페이지는 같은 잉크 줄기였지만, 종이는 달랐다. 웨건은 지혜의 어깨에 손을 대지 않았고, 방문객은 책장을 내려다보지 않고 기다렸다. 네 번째 칸 앞에는 아직 글자가 없었다.
이 장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 풀렸다 · 책장 뒤 봉투의 '원고는 이 방에서 나가지 못한다' 메모🧵 풀렸다 · 타이머 받침 아래 녹음용 구멍
15화
📍 2층 서재 · 낮 · 그 사이 몇 분
낮이었다. 2층 서재였다. 지혜는 계단 난간 아래에 기대어 있었고, 방문객은 책장을 가리킨 채 서 있었다. 웨건은 복도 끝에서 주먹을 펴지 못한 채 날쌘돌이를 보았고, 날쌘돌이는 붓 손가락을 책등에 대고 있었다. 책상 위 가운데 이름 끝 획은 거의 말랐고, 타이머 받침 아래 녹음 구멍에서는 카세트가 돌아갈 준비음만 남아 있었다.
웨건이 앞으로 나섰다.
"깝치지 말았어야지…"
날쌘돌이의 어깨가 움직였다. 웨건은 그것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너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이제 그만 가라."
팔이 뻗었다. 날쌘돌이는 몸을 돌리지 않았다. 붓 손목이 웨건의 팔목을 막았다. 나무 몸통이 뼈를 때리는 소리가 났고, 웨건의 손가락이 허공을 훑었다. 날쌘돌이는 비틀리지 않았다.
그 사이 날쌘돌이의 다른 손이 필통 쪽으로 갔다.
물이 튀었다.
클립보드 위 샘플지가 젖었고, 방문객의 돋보기 렌즈에 물방울이 맺혔다. 남자는 종이를 들어 올리려다 손바닥 자국이 번지는 것을 보고 멈췄다. 그러나 물줄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필통 바닥에 끼워 둔 두 장의 쪽지가 겹쳐 적셔지자, 유족 쪽지의 가운데 줄 지시와 출판사 쪽지의 세 줄 지시가 같은 잉크 번짐 위에서 겹쳐 보였다. 날쌘돌이는 그것을 한 번만 읽고 고개를 들었다. 부른 이는 둘이었고, 원하는 줄도 둘이었다. 그 사이에 숨겨진 줄이 있었다.
방문객은 젖은 샘플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마지막 페이지에 붙인 종이. 직접 꺼내 주시겠습니까."
지혜가 난간을 붙잡았다. 무릎이 먼저 꺾였다. 등이 난간에 기대어졌고, 손가락 힘이 풀렸다. 일어서지 못했다.
녹음 구멍에서 카세트가 한 칸 돌아갔다.
창밖 스피커가 끊긴 문장 다음 음절을 이어 읽기 시작했다. "누구든 끝을—" 다음이 아니었다. 결말 페이지 세 이름 뒤에 이어지지 않는 문장이 흘러나왔다.
"범인의 이름은 처음부터 틀렸다."
문장은 사람의 말이 아니었다. 녹음된 목소리였고, 종이 위 세 이름과 맞물리지 않았다. LED는 여전히 꺼져 있었고, 멈춘 타이머 바늘은 책상 모서리에 그대로였다. 사십칠 분을 남기고 시작했던 그 시계였다.
웨건은 스피커 쪽을 보았다. 작가가 맡긴 문장이 공기를 타고 돌아왔다.
날쌘돌이는 책등에서 붓을 떼지 않았다. 방문객의 손가락은 책장 깊숙이 꽂힌 책을 가리키고 있었고, 책 겉표지 사이로 붙인 종이의 잉크 가장자리는 아직 어두웠다. 지혜는 난간 아래에서 숨을 쉬었고, 붕대 감긴 손은 바닥을 짚지 못했다.
방문객이 다시 말했다.
"네 번째 칸에는 가운데 줄의 이름을 적으십시오. 종이는 직접 꺼내 주셔야 합니다."
책장 속 마지막 페이지와 책상 위 페이지는 같은 붓 줄기였지만, 종이는 달랐다. 클립보드 네 번째 칸의 손바닥 자국은 물에 번져 윤곽만 남았고, 이름 칸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이 장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 풀렸다 · 사십칠 분을 남긴 타이머🧵 풀렸다 · 타이머 받침 아래 녹음용 구멍
에필로그
에필로그를 쓰기 전에, 종막 이후 실제 결말과 인물·물건이 어떻게 남았는지 확인합니다.날쌘돌이는 칠 년이 지난 겨울, 다른 동네의 좁은 방에서 그 책을 다시 펼쳤다. 마지막 장 가운데 줄에는 처음 적혀 있던 이름이 없었다. 그는 그날 쓴 붓을 서랍 맨 아래에 넣어 두었다. 손바닥 먹물 자국은 오래전에 씻겨 나갔지만, 종이를 집을 때마다 그는 손가락부터 보았다. 그 방 밖에서 그는 지운 이름의 주인을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웨건은 책을 고치던 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작가가 맡긴 한 문장을 책 안에 넣었다. 그 문장은 다시 고치지 않았다. 목도리는 서랍 속에서 몇 년이 더 갔고, 그는 예전에 외워 둔 차만 사서 마셨다. 주먹을 쥐면 턱 아래를 친 자리가 먼저 떠올랐다.
지혜는 그 집이 넘어간 뒤에도 작가가 들려준 결말의 방향을 어디에도 적지 않았다. 책이 나왔을 때 마지막 장은 비어 있지 않았다. 그녀는 낡은 붕대를 새것으로 갈았다. 턱 아래 멍은 몇 달 만에 사라졌다. 누가 그 책을 밀어 주면 그녀는 표지만 보고 덮었다.
주사위는 코드가 굴리고, 점선이 그어진 말은 사람이 쓴 문장 그대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