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 · 13씬

스물아홉 번째 이름

스물아홉번째이름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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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 4명
yungyeong파직당한 사관
seohong전의감 의관
manseok조사단 호송 군관
dani섬에서 온 무녀
목차 · 13씬

1화

뱃사공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포구에는 마중 나온 사람이 없었다. 흰 천이 묶인 말뚝들이 갯바위를 따라 줄지어 흔들렸다. 윤경이 세었다. 스물여덟이었다.

서홍은 마지막 말뚝 밑동의 흙을 문질렀다. 아래쪽이 아직 젖어 있었다.

"이건 오늘 박은 겁니다."

언덕 위에 사람이 하나 서 있다가, 몸을 돌려 마을로 걸어 들어갔다. 뛰지 않았다. 그것이 더 나빴다.

그동안 단이는 줄의 반대편 끝에서 세 번째 말뚝의 매듭을 풀었다. 천은 소매 안으로 들어갔고 매듭은 처음과 똑같이 다시 묶였다. 아무도 보지 않았다.

2화

마을 초입에서 윤경은 걸음을 멈췄다. 위쪽 다섯 채만 문을 산 쪽으로 냈다. 문틀이 새것이었다.

서홍이 문을 두드리기 전에 만석이 먼저 문 앞에 섰다. 칼은 뽑지 않았다. 다만 문과 서홍 사이에 자기 몸을 놓았다.

"전의감에서 왔습니다. 문 좀 열어주십시오."

문이 한 뼘 열렸다. 늙은 여자가 물었다. 전의감 서홍이오. 서홍은 자기 이름을 말한 적이 없었다.

포구에는 단이 혼자 남았다. 천의 글씨를 읽었다. 나이가 틀려 있었다. 열둘이 아니라 스물넷이었다. 그것 말고는 전부, 열두 해 전에 이 섬에서 지워진 그 이름이었다.

3화

다섯 채에서 열한 명이 나왔다. 윤경이 물었으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과 못 듣는 것은 다르다.

서홍은 방으로 들어갔다. 역병이 도는 방에서는 냄새가 난다. 냄새가 없었다. 사내는 앉아 있었고 맥이 고르게 뛰었다. 이름을 묻자 아주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알려주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밖에서 만석은 단이를 보고 있었다. 놓쳤다. 다시 보았을 때 단이는 열한 명 중 하나와 눈이 마주쳐 있었고, 둘 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4화

서홍이 호적을 폈다. 사내는 세 번째 장에서 멈추고 소리 없이 울었다. 한참 뒤에 물었다. 내가 며칠을 잃었소. 그리고 다시 물었다. 포구에 천이 몇 장 걸려 있소.

스물여덟입니다.

"어제는 스물일곱이었소."

만석은 최상단 집 상 위에서 미리 잘린 무명천 뭉치와, 먹이 마른 천 한 장을 보았다. 서홍. 서른아홉. 서홍의 나이를 만석은 몰랐다. 마을은 알고 있었다.

단이는 옛 집터에 닿았다. 집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쓸어놓은 빗자루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시각 윤경은 창을 열었다. 아홉이 포구로 내려갔다. 한 식경 뒤 여덟이 돌아왔다.

5화

늙은 여자가 서홍의 말을 끝까지 듣고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들은 이름을 원하지 않았소."

윤경은 마당에서 호적을 대조하다 소리 내어 읽었다. 습관이었다. 사관은 대조할 때 소리 내어 읽는다. 십오 년을 그렇게 일했다.

열한 개를 읽은 뒤 만석이 호적을 덮었다. 그중 하나가 일어섰다. 그리고 포구 쪽으로 걸었다. 뛰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홍은 움직이지 않았다. 호적 한 장을 천천히 접어 품에 넣었다. 접는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그것이 더 나빴다.

"내가 어제 그 사람한테 이름을 돌려줬습니다."

비탈 아래에서 마흔쯤 된 여자가 단이의 깃을 내렸다. "네 어미가 아직 쓸고 있다. 열두 해를. 이름도 없이."

6화

윤경은 호적을 태우기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확인한다는 것은 읽는다는 뜻이었다. 셋째 장에서 손이 멈췄다. 이미 다 외웠기 때문이었다.

열아홉이 사라졌고 스물이 남았다. 사라진 열아홉은 이제 그의 머릿속 말고는 어디에도 없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만석이 마당 끝에 서 있었다.

서홍은 포구에서 두 시진을 찾았다. 시신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갯바위 틈에서 흰 천 한 장을 꺼냈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빈 터에 여자가 있었다. 늙었고 빗자루를 들고 있었다. 자기 이름은 몰랐다. 그런데 딸의 이름은 정확하게 불렀다.

7화

나흘째 아침, 밥상은 이미 치워져 있었다. 서홍이 품에서 흰 천 한 장을 꺼내 상 위에 펼쳤다. 손끝이 결을 따라갔다. 무명은 뻣뻣했고 먹은 한 점도 없었다. 포구에 걸린 것들과 같은 새 천이었다.

윤경이 상의 가장자리를 짚고 섰다. 붓은 없었다. 그는 짧게 숨만 고르고 입을 열었다.

"태웠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억합니다."

거둘 수 없는 문장이었다. 열아홉은 그 안에 들어 있었다. 호적을 태운 자리에 서 있던 사람은 윤경뿐이었고, 방 안의 넷은 그 숫자가 무얼 가리키는지 알고 있었다.

서홍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손가락이 천의 날을 한 번 더 쓸었다.

만석의 얼굴은 창 쪽에 가 있었다. 윤경을 보지 않았다.

단이는 말하지 않았다. 눈만 만석의 입술에 두었다. 깃은 높이 잠겨 있었다.

만석의 입술이 소리보다 먼저 움직였다. 서. 홍. 단이는 그 모양을 놓치지 않았다. 만석의 눈은 사관이 아니라 의관에게 가 있었다.

"서홍이오. 서른아홉." 낡은 갑주가 숨결에 살짝 울렸다. "최상단 집 상 위였소. 먹은 이미 말라 있었소."

서홍의 손이 천에서 떨어졌다. 거칠어진 손끝이 허공에 멈추었다.

만석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름 옆에 미리 잘라 둔 무명이 뭉치로 있었다고, 손대지 않고 내려왔다고, 잘라 둔 양은 한 장이 아니었다고 했다. 해가 기우기 전에 올라가면 아직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보고가 끝난 뒤에야 입이 다물어졌다.

상 한가운데 백지가 남아 있었다. 만석이 말한 천과 결이 같았다. 하나는 이미 이름이 있고, 하나는 아직이었다. 두 장이 쌍으로 놓인 꼴이었다.

윤경이 단이를 보았다. 단이는 만석의 입이 다문 뒤에도 그곳을 보고 있었다. 만석이 그 시선을 받았다. 턱이 한 번 움직였으나 말은 더 나오지 않았다.

창 밖으로 산 쪽 다섯 채가 보였다. 맨 위 집의 창은 열려 있었다. 열린 방향은 마을이 아니라 산이었다.

8화

해가 처마를 넘기 전에 다섯 채의 맨 위가 열렸다. 상 위에 무명이 뭉치로 남아 있었고, 창은 산을 향해 열려 있었다. 바람은 마을 쪽이 아니라 그 창으로 들어왔다.

윤경은 상 앞에 섰다. 뭉치를 흩뜨리지 않고 잘린 날을 하나씩 짚었다. 면이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여덟. 입술이 숫자 모양으로 움직였다가 멈췄다. 이번에는 소리를 넣지 않았다. 벼루를 기울이면 먹물 표면이 아직 젖어 있었다. 오늘 간 것이었다. 붓은 산 창 쪽에 뉘여 있었고, 붓털 사이에 무명 보풀이 하얗게 박혀 있었다. 창을 보며 자르고 창을 보며 찍던 자리가, 사람이 빠진 채로 남아 있었다.

만석은 문간에 섰다. 넓은 어깨가 문 너비를 채웠다. 굵은 검지가 문설주를 짚었다. 방 안을 보지 않았다.

그 등이 문을 가린 동안 서홍의 손이 상 위로 갔다. 말라 붙은 글이었다. 서홍. 서른아홉. 만석의 낡은 갑주가 문설주에 닿아 한 번 울렸다. 그 울림 뒤에 천이 상에서 걷혔다.

"이건 내 겁니다."

품이 닫혔다. 상 한가운데가 비었다. 서홍은 만석의 등을 보지 않았다. 만석도 뒤를 돌지 않았다.

단이는 집 뒤로 돌아갔다. 깃을 높이 잠근 채로 판벽을 따라갔다. 사람 드나드는 뒷문은 없었다. 산으로 열린 창 아래, 흙이 젖어 있었다. 발자국은 방 안에서 나와 산 쪽으로 찍혀 있었다. 앞코보다 뒤꿈치가 깊었다. 나가는 걸음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문간을 지키는 만석의 등이 보였다. 앞만 본 등이었다. 단이는 그 등을 향해 부르지 않았다.

비탈에서 짚신 소리가 올라왔다. 만석이 무릎을 문턱에 걸었다. 노인이 마당 돌 위에 섰다. 만석을 밀지 않았다. 고개만 옆으로 기울여, 겨드랑이 너머를 보았다.

청색 관복에서 눈이 멈추었다. 깃의 선, 소매의 길이. 한 번으로 끝냈다.

"의관."

시선이 상으로 내려갔다. 뭉치는 여덟이었다. 먹이 말라 있던 자리만 비어 있었다. 노인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하나를 접었다. 세는 손이었다. 그 손이 멈춘 곳은 서홍의 품이었다. 천의 모서리가 관복 밖으로 나와 있었다.

윤경의 손가락은 여덟 번째 날 위에 남아 있었다. 만석의 검지는 문설주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단이는 창 아래 젖은 흙에 서 있었고, 산으로 난 발자국은 이미 그늘 속으로 꺾여 들어가 있었다.

문간에 노인이 서 있었다. 상에는 빈자리가 있었고, 산에는 발자국이 있었다.

9화

같은 집이 두 갈래로 열렸다.

서홍은 상 앞을 떠났다. 산으로 열린 창틀을 넘었다. 창 아래 흙은 아직 젖어 있었다. 앞코보다 뒤꿈치가 깊은 자국이 그늘 속으로 꺾여 있었고, 그는 그 꺾임을 따라 올라갔다.

단이는 발자국에서 돌아 판벽을 끼고 마당으로 나왔다. 창 안을 보지 않았다. 그녀가 문간 쪽으로 사라진 뒤에야 청색 관복이 창틀을 지났다.

문간에서 만석의 손이 노인의 소매를 잡았다. 문설주를 짚던 검지가 그대로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넓은 어깨는 문을 비우지 않았다.

"누구 명입니까."

노인은 밀리지 않았다. 붙잡힌 채로 턱만 들었다. 산으로 열린 창이었다.

"적는 손은 여기 없소."

만석의 등이 문 너비를 채운 사이, 상 한가운데가 마당에 열렸다. 먹이 말라 붙어 천이 걷힌 자리였다. 돌 위에서 그것은 가려지지 않았다. 노인의 다른 손이 허공에서 하나를 접었다. 세는 손이었다.

윤경이 그 등을 옆으로 지나 문간에 섰다. 붓은 손에 없었다.

"열두 해 전입니다. 호적을 정리하러 온 사관이 있었습니다."

노인의 눈이 창에서 떨어졌다.

"왔었소."

시선이 윤경의 왼쪽 눈 아래로 내려갔다. 흉터의 길이만큼 머물렀다. 만석은 붙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그 멈춤을 보았다. 단이의 손도 깃을 내리던 도중에 거기에서 멎었다.

단이는 노인 앞에 섰다. 늘 높이 잠그던 깃을 내렸다. 목선이 나왔고, 왼쪽 손목의 오래된 흉터가 소매 끝에 걸렸다. 얼굴이 그 문간에 놓였다.

노인의 숨이 걸렸다. 만석의 손 안에서 붙잡힌 손가락이 한 번 펴졌다. 산 창을 가리키던 손이 단이의 손목에서 멈추고, 그녀가 방금 돌아온 뒷길을 향해 열렸다.

만석의 턱이 그 손을 따라 움직였다. 윤경의 흉터에서 단이의 얼굴로, 단이의 얼굴에서 산으로.

비탈 위, 그늘이 걷히자 바위가 하나 있었다. 평평했고 한쪽이 닳아 있었다. 오래 앉아 아래를 보던 자리였다. 마을이 내려다보였고 포구의 말뚝이 한눈에 들어왔다. 스물아홉 번째가 아직 비어 있었다.

바위 옆에 무명이 한 장 놓여 있었다. 먹은 마르지 않았다. 첫 획만 찍혀 있었고 이름은 끝나지 않았다. 적던 발자국은 그 획을 남긴 채로 더 위로 찍혀 있었다.

서홍의 손끝이 천의 결을 짚었다. 상 위의 뭉치와 같았다. 그는 천을 접어 품에 넣었다. 관복이 한 번 울렸다.

문간에서는 노인의 손가락이 산을 가리킨 채로였다. 만석의 등은 아직 문을 채우고 있었다. 상의 빈자리는 마당에 열려 있었고, 산에서는 다음 획을 찍던 자국이 더 위로 이어져 있었다.

10화

만석이 소매를 놓았다. 노인의 옷자락이 문설주로 돌아갔다. 문을 막던 등이 비탈로 빠졌다. 칼은 집에 있었다.

서홍은 닳은 바위를 지나고 있었다. 품에 천이 젖어 있었다. 첫 획의 먹이 관복 안에서 마르지 않았다. 발자국은 위로 이어져 있었고, 그는 그 찍힘을 따랐다.

만석이 먼저 돌을 밟았다. 흔들리는 모서리를 눌러 멈춘 뒤에야 서홍의 발이 그 자리를 밟았다. 등이 앞을 가린 만큼 길이 열렸다. 숨이 짧아졌다. 청색 관복이 같은 비탈에 붙었다. 한 걸음도 벌어지지 않았다. 적던 손은 보이지 않았다.

문간에서 윤경이 입을 열었다.

"스물아홉이던 해 봄부터 여름까지가, 제게 없습니다."

마지막 음이 떨어지기 전에 노인이 받았다.

"그 계절에 사관이 왔소."

윤경의 입이 한 이름을 위해 벌어졌다. 혀가 자리를 찾다 멎었다.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문간에 남은 자들이 그 겹친 말을 들었다.

단이는 노인이 가리킨 뒷길에 발을 놓지 않았다. 산을 올려다보았다. 내린 깃 밖으로 목선이 나왔다.

"어머니."

비탈이 그 호칭을 올렸다.

위에서 자국이 돌에 끊겼다. 서홍의 손끝이 허공을 짚었다. 발자국은 거기까지였다. 끊긴 돌 위로 부름이 닿았다. 획을 찍던 그림자가 소리 쪽으로 멈췄다. 고개는 마을을 향한 채였고, 붓을 내리던 손목만 멎었다. 어깨 너머로 포구가 열렸다. 스물아홉 번째 말뚝이 비어 있었다.

만석은 그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아래에서 어머니와 빈 계절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검지가 칼집 마루에 얹혔다. 칼은 나오지 않았다. 그 손이 머문 동안 서홍이 옆에서 그 마디를 보았다. 만석의 눈은 앞에 없었다.

그림자가 부름 쪽으로 발을 내렸다. 오래 앉아 아래를 보던 바위가 비었다. 지켜보던 등과 적던 등이 같은 걸음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문간에는 그 계절의 사관이라는 말이 남아 있었고, 비탈에는 내려오는 발이 있었다.

11화

문간과 비탈은 서로의 등을 본 채로 같은 숨을 쉬었다.

윤경은 문턱에 섰다. 붓은 손에 없었다. 노인의 옆에서 입을 열었다.

"제가 지웠습니다. 이제 돌려드립니다."

첫 이름이 나왔다. 호적을 대조하던 그 속도였다. 십오 년을 그렇게 읽었다. 음이 마당을 지나 뒷길에 붙었다.

만석은 비탈에서 그 길을 내려다보았다. 소매를 놓았던 손이 아래를 가리켰다. 문간을 찾았다. 노인은 거기 있었고, 만석의 발은 여기 있었다.

"그때 왜 고개를 저으셨습니까."

질문은 돌 아래로 떨어졌다. 노인은 턱을 들지 않았다. 만석을 보지 못했다. 그 빈 곳을 향해 윤경의 두 번째 이름이 올라왔다. 내려가는 말과 올라오는 이름이 만석의 무릎 앞에서 스쳤다.

그는 그 박자를 보았다. 첫 음이 발치에 닿는 순간, 내려오는 손의 붓이 같은 너비로 움직였다. 칼집에 얹힌 검지는 그대로였다. 서홍이 옆에서 그 마디를 보았다. 질문은 아래로 갔고, 그림자는 위에 있었다. 만석의 고개는 문에 박혀 있었다.

단이는 열두 번째 이름을 등 뒤로 흘리며 뒷길을 올랐다. 문간을 비웠다. 노인은 그 자리에 남았고, 윤경의 입은 그 옆에서 열세 번째를 내고 있었다.

서홍은 그림자를 피하지 않았다. 내려오는 어깨가 닿을 거리에서 품을 열었다. 첫 획이 찍힌 천이 바람 없이 펼쳐졌다. 발이 멈췄다. 붓을 내리던 손목이 천의 결 앞에서 공중에 남았다.

윤경의 혀가 열여덟을 통과했다. 열아홉에서 목이 닫혔다. 음이 잇몸 뒤에 걸렸다. 문간에 남은 그 음이 비탈로 넘어가, 펼쳐진 무명 위에서 다음 획의 모양을 찾기 시작했다.

먹은 천에만 있지 않았다. 젖은 첫 획이 서홍의 소매로 번졌다. 관복의 청색이 검게 갈라지며 둘째 획을 받을 자리가 열렸다. 그림자는 그 번짐을 보았고, 손은 붓을 쥔 채로였다.

단이는 멈춘 손목을 향해 손을 넣었다. 붓대와 손가락 사이로 그녀의 손가락이 들어갔다. 잡은 손은 놓치지 않았다. 어머니는 딸을 보았다. 붓은 놓지 않았다.

만석의 질문은 문간에 닿지 않았다. 노인의 입은 닫혀 있었다. 윤경의 목도 닫혀 있었다. 천 위에서 획만 움직였다.

12화

서홍이 소매를 걷어 올렸다. 먹 번진 안쪽이 햇빛을 받았다. 그는 그 자리를 어머니의 붓 아래로 밀어 넣었다.

"쓰십시오. 대신 이게 마지막입니다."

붓끝이 그 말의 끝과 함께 내려왔다. 둘째 획이 소매에 찍혔다. 윤경이 잇몸 뒤에 남긴 열아홉 번째의 나머지 모양이었다. 먹은 그 한 획을 마지막으로 삼고 멎었다. 손목이 공중에 남았다.

단이의 손가락은 그 공중을 놓고 있지 않았다. 붓대와 살 사이에서 마디가 하얘졌다.

"제 이름을 부르셨잖아요. 그럼 어머니 이름도 어딘가 있습니다."

만석이 비탈을 뛰었다. 문간을 등지고 올랐다. 칼은 집에 있었다. 그는 단이의 어깨 너머로 손을 넣었다. 굵은 검지가 그녀가 붙든 손등을 덮었다. 멈추려는 힘이 그 위에 실렸다. 서홍이 옆에서 그 마디가 포개지는 것을 보았다. 손목은 이미 소매를 찍은 뒤였다. 만석의 손바닥은 그 획을 덮지 못했다.

세 손이 한 손목에서 기울었다. 닳은 바위 너머로 포구가 그 기울기 안에 들어왔다. 붙든 손이 붓이 되었다.

문간에서 윤경의 목이 열렸다. 붓은 손에 없었다. 십오 년의 속도로 마지막 음을 밀었다.

"…윤경입니다."

윤경은 마당을 건너지 못했다. 사초에서 지우라던 이름의 첫 소리만 비탈에 떨어졌다. 도.

노인의 턱이 들렸다. 문설주를 짚은 손이 그 음을 받았다. 고개를 저어 삼켰던 것이 그 한 소리였다.

스물아홉 번째 말뚝에서 천이 무거워졌다. 열두 살에 죽었다고 적혀 있던 이름이 걸렸다. 단이의 발이 맞잡은 손이 가리킨 길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만석의 검지가 허공에 남았다. 서홍의 소매는 마지막 획을 머금고 젖어 있었다. 윤경의 입은 문간에 열린 채로였다.

물색 저고리가 바위 아래로 줄어들었다. 서홍은 젖은 소매를 내리지 못했다. 만석은 포갠 손을 거둬 자기 검지를 보았다. 문간에서는 노인의 턱이 포구를 향해 남아 있었다.

스물아홉 번째 천이 한 번 불었다. 단이가 그 아래로 들어갔다. 발은 멈추지 않았다.

13화

문간의 턱은 포구를 향해 남아 있었다. 윤경이 그 턱을 보고 입을 열었다.

"도. 다음은 무엇입니까."

노인의 잇새가 벌어졌다. 삼켰던 음이 나왔다.

"화요."

도화. 두 음이 붙었다. 윤경의 혀가 사초의 빈칸 위에서 멈추던 그 모양으로 온음을 받았다. 지우라던 이름이 이 문간에 있었다. 그는 다음을 메우지 않았다. 온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왼손이 허공에서 붓 자리를 쥐었다. 손 안이 비어 있었다. 노인이 턱을 내리지 않은 채 말을 보탰다.

"그 아이는 그 이름으로 나갔소. 열두 해 전, 밤에 포구로 내려간 아홉에 나는 끼지 않았소. 산도 끼지 않았소. 적는 자와 삼키는 자는 내려가지 않소. 가져가시오."

윤경의 발이 문턱을 지났다. 온음은 입에 남았고, 노인의 입은 닫혔다.

산 중턱에서 서홍은 젖은 소매를 다시 내밀지 않았다. 먹 번진 안쪽을 팔에 접어 붙인 뒤, 어머니의 손가락 사이로 붓대만 집었다. 마디가 열렸다. 붓이 그의 손으로 넘어왔다. 마지막 획을 찍던 손이 비었다. 빈손이 아래로 벌어졌고, 포구가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서홍은 붓을 쥐고 그 자리에 섰다. 소매의 마지막 획은 접힌 채로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말뚝 아래, 단이가 천의 매듭을 집었다.

"이건 제 겁니다."

밀고, 당겼다. 매듭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천의 안쪽이 눈을 가렸다. 열두 해 전, 등이 포구의 널빤지로 밀려 나갔다. 밀어낸 손들이 물 쪽에 있었고 돌아보지 말라는 어깨가 섬 쪽에 있었다. 길의 끝이 지금 발밑과 같았다. 그때 이 말뚝은 비어 있었다. 지금은 열두 살로 죽었다고 적힌 이름이 그 위에 걸려 있었다.

만석이 비탈을 내려왔다. 칼은 집에 있었다. 스물아홉 번째 말뚝 앞에 서서 천 아래로 손을 넣었다. 물색 저고리의 깃이 굵은 검지에 걸렸다. 단이의 손이 매듭 위에서 멎었다. 그녀는 뒤를 보지 않았다. 만석은 천 안쪽을 보지 못했다. 깃 아래 온기만 손바닥에 담았다.

문간을 벗어난 발이 있었고, 산 중턱에 붓이 있었고, 말뚝 아래에는 풀리지 않은 매듭과 칼 없는 검지가 있었다. 세 곳은 서로를 보지 못했다.

에필로그

윤경은 다시는 그 섬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사관직은 끝내 회복되지 않았고, 그는 그것을 청하지도 않았다. 문간을 나설 때 비어 있던 왼손은 그 뒤로도 붓을 집지 않았다. 비 오는 날이면 왼쪽 눈 밑이 당겼고, 입 안의 온음은 삼킨 채로 두었다. 누가 이름을 묻거든 그는 호적을 대조하던 버릇대로 소리 내어 자기 이름만 읽었다.

서홍의 관복 소매는 접힌 채 말랐다. 마지막 획은 지워지지 않았고, 그는 여름에도 그 소매를 내리지 않았다. 받아 든 붓은 책상 위에 두었으나 벼루는 갈지 않았다. 황해도의 장계를 두 번째로 올리지 않은 것처럼, 도화도에 대한 장계도 쓰지 않았다. 손끝은 그대로 거칠었다.

만석은 칼을 섬의 집에 두고 나왔다. 오른손 검지는 무엇이든 집을 때마다 먼저 나갔고, 마디는 그 굵기 그대로였다. 밀명은 수행하지 않은 채로 서류 속에서 사라졌으며, 그는 그것을 확인하러 가지 않았다. 깃 아래 온기를 담았던 손바닥을 그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스물아홉 번째 천은 내리지 않았다. 매듭은 몇 해가 지나도 같은 자리에 있었고, 바람이 불면 물색이 비쳤다고들 했다. 만석만은 깃을 짚었던 검지를 기억했다. 윤경은 문간에 남은 온음을, 서홍은 붓을 받은 뒤 아래로 벌어지던 빈손을 기억했다. 단이라는 두 음은 호적에 없었고, 말뚝 위의 천에만 열두 살로 적혀 있었다.

서고